한국 대중문화사에 길이 남을 가수이자 영화 제작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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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진성만은 가수이자 영화 제작자로 한국 대중문화에 큰 자취를 남긴 인물입니다.
1960년대 쟈니브라더스 멤버로 활동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특히 공군 군가 ‘빨간 마후라’로 국민들에게 강렬한 기억을 선사했습니다.
이후 영화 제작자로도 활약하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2025년 9월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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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에서 시작된 삶
진성만은 1940년 3월 29일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도 음악과 연극, 영화에 관심을 보이며 예술적 감각을 키웠습니다. 이 시절의 경험은 훗날 그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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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브라더스와의 만남
1960년대, 그는 남성 사중창단 쟈니브라더스의 멤버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특유의 매력적인 음색과 무대 장악력은 당시 음악 팬들의 주목을 받았고, 그룹 활동은 그의 이름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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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마후라’로 국민적 사랑
1964년 공군 군가로 발표된 ‘빨간 마후라’는 그의 인생곡이라 불립니다. 힘차고 당당한 목소리로 불린 이 곡은 군인뿐 아니라 국민 전체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며 꾸준히 불려왔습니다. 진성만은 이 노래를 통해 한 세대를 대표하는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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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와 성우로의 확장
그의 활동은 노래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섰고, 성우로도 활약하며 다채로운 목소리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목소리에 담긴 감정 표현은 관객과 청취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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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사 ‘지미필름’의 대표
음악 활동 이후 그는 영화 제작사 ‘지미필름’을 운영하며 제작자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하며 대중문화 발전에 또 다른 방식으로 기여했습니다. 이는 진성만이 단순히 가수에 그치지 않고 예술 전반에 열정을 쏟은 인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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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의 마지막 나날
생의 마지막 무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예술인으로서의 삶을 되돌아봤습니다.
2025년 9월 13일,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나며 한국과 미국의 많은 이들에게 애도의 물결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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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문화에 남긴 의미
그의 이름은 단순히 한 곡의 노래로 기억되기에는 부족합니다. 진성만은 가수, 뮤지컬 배우, 성우, 영화 제작자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한국 대중문화사의 여러 장을 채웠습니다. 그의 발자취는 앞으로도 후대 예술인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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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활동 정리
구분 내용
출생 1940년 3월 29일, 전북 익산
대표곡 1964년 공군 군가 ‘빨간 마후라’
주요 활동 쟈니브라더스 멤버, 뮤지컬 배우, 성우, 영화 제작자
별세 2025년 9월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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